#3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이 책은 까칠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이 책의 제목에서 낚였다(?). 이 책을 선정할 당시 책을 추천한 사람도 좀 더 까칠하게 사는 법에 대해서 배우기 위해서 이 책을 추천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기대를 가지고 이 책에 투표했다. “내가 너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는건 아닐까?”,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을 것 같아!” 이런 마음으로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까칠하게 사는 방법”은 이 책의 주된 내용이 아니다.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문체가 돋보였던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부담스럽지 않는 에세이로 읽는 심리학 비빔밥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심리상담가인 저자가 다양한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느낀 점들과 심리학 지식들을 잘 버무린 에세이이다. 리뷰하기 위해 다시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책은 심리학 실용서적인가? 에세이인가?”이다.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며 독자들의 인간관계에 도움이 될만한 심리학 지식들을 전달하고 있어서 내용이 알차다. 동시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에게 힘과 위로를 전달하는 에세이의 역할에도 충실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함께 토론했던 맴버들은 이 책의 장점으로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문체”를 이야기했다. 담담한 문체가 ‘까칠하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지만, 동시에 따뜻함과 공감이 베어있어 매력적이다. 인간관계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치유해온 심리상담가의 따뜻한 마음이 뭍어나오는 문체 덕분에 생각보다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는데 어렵지 않았다. 저자가 심리상담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오는 문체를 쓸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내 문체는 어떤 느낌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문체는??)

사람들은 왜 에세이를 읽는 걸까?


이 책을 읽기 이전에 나는 사람들이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몰랐다. 학창시절, 에세이(수필)은 문제해결을 위해서 읽어야하는 장르였으며, 대학에 와서도 실용적인 책들만 읽었고 그런 책들이 가치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으로 에세이라는 장르를 판단한다면, 읽고나서 머릿 속에 남는 것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는 에세이의 진정한 맛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어쩌면 ‘에세이’야 말로 ‘마음의 양식’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아닐까? 생각보다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사람들로부터 위로와 공감받기 점점 어려운 세상에서 한 권의 에세이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있다.

행북 문화공동체 지정독서로 선정되지 않았으면 읽지 않았던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에세이의 진정한 맛을 배웠다. 이 책은 특히 에세이를 “여성독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독자들에게 권한다.

“심리학 지식과 함께 따뜻한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에세이가 여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