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안창환 작성, 이동형 올림!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원작이 실린 단편집이다.

먼저 일본어를 배운 나로서는 도쿄 사람의 차분한 감성이 아닌 오사카 특유의 과장된 감성이 글을 통해 느껴진다. 원어판과 같이 읽다보니 개정판이 아닌 구판 번역본을 읽다보면 번역이 매끄럽지가 않다. 응사에 나오는 부산사람들이 서울말을 쓰는 것처럼 일본어로 번역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자연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사람과 부산 사람의 감성이 다른 것처럼, 도쿄에 비하면 오사카 사람의 기질은 부산의 그것을 닮았다.

단편집의 남자들은 어딘가 폭발적인 야성을 감춘 동물원의 호랑이 같은 느낌을 풍긴다. 여자는 그 호랑이를 조련하는 조련사 같기도 하고.

불륜, 근친상간, 장애인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써내려가는 저자의 필력은 달콤하다. 몽상과, 현실에 타협함과, 대리만족.. “사랑에 빠지는 건 죄가 아니잖아”라고 하는 어느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사랑엔 선도 악도 없고 법으로 규정되는 사랑도 세상엔 없다. 인간 본성의 솔직한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풀어내는 단편집을 보면 일본 특유의 섬세함이 숨어있다. 사실 이런 류의 사랑은 섬세하게 보지 않으면 느껴질 수가 없고, 사실 그런 사랑에 눈을 뜬다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회의감이 들지 않을까 싶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편에서 쿠미코는 본명보다 프랑스식 이름 조제로 불리고 싶어한다. 저자도 프랑수아즈 사강의 작품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딱딱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자주인공의 직설적인 감정은 남자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사강 작품의 주인공처럼,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것이 설령 장애인일지라도. 그러나 현실에서는 장애인은 물고기처럼 죽은 존재이다. 정상인과 장애인으로 구분된 사회에서 이들은 늘 보살핌 받아야하는 피동적인 존재, 죽은 존재인 것이다. 산자와 망자의 결혼생활이란 쉬운 일일까. 요즘말로는 장애우라고 하지만 그 언어유희마저 작위적이고 가식적인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은 현실에 부딪힌다. 그 둘의 사랑은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편만 봐도 인물들 모두가 현실도피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사랑의 관’에 나온 여자 우네는 전남편으로부터 ‘이중인격’이란 말을 듣는다. 우리는 항상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본능의 얼굴을 숨기고 있다. 사강같은 사랑은 그야말로 조제겠지만 현실은 쿠미코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츠네오와 조제가 결별하는 것으로 끝난다. 감독은 사강적인 사랑은 동화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인지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다니며, 생선구이를 먹는 쿠미코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가 현실이라는 해저로 침잠하는 물고기 같은 결말을 만든다. 현실이 새드엔딩인것일까 몽상이 해피엔딩인 것일까..

타나베의 단편집은 현실과 몽상의 희미한 경계를 오가는 서사로 달콤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단편집의 매력은 이 달콤함이 쓴맛으로 변하기 전에 끝나는 것이다. 그림으로 치자면 여백의 미를 남기는 것이다. 수족관의 떠다니는 물고기가 주는 몽롱함처럼, 순수함과 가식 두가지를 모두 가지려는 욕심쟁이 어른들이 빚어내는 도수 약한 술맛을 맛보는 것은 어떨까.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