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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네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작성자
유진
작성일
2020-08-02 21:44
조회
917
▶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1. 공동체 감각(social interest)
아들러가 제시한 공동체 감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라는 개념부터 재정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동체의 개념은 소속되어있는 학교, 직장, 가족, 지역사회 등이다. 하지만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존의 범위에서 더 나가아 과거와 미래 등 시간적인 개념과 우주의 개념까지 통틀어 ‘만물 공동체’를 의미한다. 아들러가 제시한 공동체의 의미가 글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와닿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아들러는 ‘공동체’를 이같이 정의했을까?

아들러는 사회적 최소단위를 생각할 때 ‘나와 너’를 기준점으로 한다. ‘나와 너’를 기준을 할 때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을 타인에 대한 집착(social interest)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사회적 관심(공동체 감각)이며,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철학자의 말이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타인은 나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므로 타인을 진정 ‘친구’로 간주하고 공동체를 ‘자신이 있을 곳’이라 느끼는 것이 공동체 감각(social interest)이라고 한다. 이전까지 ‘인정욕구’를 ‘타인’ 중심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타인에게 인정을 바라는 것 자체가 세계를 ‘나’ 중심적으로 보는 것이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란 ‘과제의 분리’를 하지 못하고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주장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소속감은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인생의 과제’에 직면하여 공동체에 공헌(commit)할 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들러는 이러한 공동체 감각(social interest)이 이상주의라며 문제를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과는 관계없습니다. 내 조언은 이래요. 당신부터 시작하세요. 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말고.”
‘과제의 분리’를 하지 못하고 타인을 포함한 세계를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에서 벗어나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고 나아가 타인을 진정한 ‘친구’로 간주하며 공헌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것, 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않고 이것을 나의 삶 속에 녹여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2. 모든 인간관계는 ‘같지는 않지만 대등’하다
아들러는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나 역시 모든 인간은 다양성과 차이를 지닐 뿐 평등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고 또 교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들러의 ‘수평관계’는 우리가 수평이라고 생각한 것이 ‘거짓 수평’이라고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예컨대 누군가를 칭찬한다는 행위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라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으며 칭찬할 때의 목적은 ‘자기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대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누군가에게는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판단한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나 역시 ‘칭찬이 독이 되는 상황’을 늘 경계하고 있으므로 동의하는 바이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관계’를 맺기 위해 아들러는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 방법으로 제시되는 아들러식 개념이 ‘용기 부여’이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을수록 ‘나는 능력이 없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므로 타인이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했는가’하는 ‘행위’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존재’의 차원에서 살펴보고 존재하는 그 자체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수직관계를 맺느냐, 수평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은 생활양식의 문제이고 인간 자신의 생활양식을 상황에 따라 바꿀 만큼 임기응변에 능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즉 한 사람이라도 수직관계를 맺고 있다면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를 ‘수평관계’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누구와도 친구처럼 지내거나 허물없이 행동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의식상에서 대등하게 보고 주장할 것은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하고 비로소 용기를 얻게 한다는 아들러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나와 너’를 분리하는 연습, 모든 관계를 진정한 ‘수평관계’로 바라보고 타인에게 공헌하는 연습, 나아가 나와 타인에게 ‘용기를 부여’하는 연습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