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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다섯번째 밤, 춤추듯이 살라

작성자
유진
작성일
2020-08-08 23:09
조회
919
▶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1. 자기수용: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

자기수용이란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긍정적 포기’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이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지금 나의 상황’ 그리고 ‘현재의 나’를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비의 기도처럼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바란다면 ‘지금, 여기’를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된 것이 아닐까?


2. 타자신뢰: 신용이 아닌 신뢰

타자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 타자를 신용하는 것과 타자를 신뢰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신용한다는 것은 내가 타자에게 전하는 마음과 정성에 대한 타자의 반응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러가 말하는 신뢰란 관계 맺기에 있어서 ‘나의 과제’와 ‘타자의 과제’를 분리하여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타자와 관계를 희망한다면 ‘관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야하며 관계가 지속될지 혹여 배신으로 끝날지는 ‘타인의 과제’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제를 분리하지 못하고 신뢰를 두려워하면 결국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이 책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느끼는 어려움 그리고 허탈감을 덜어줄 열쇠가 될 것이다.


3. 타자공헌: 도움이 되는 나

타자공헌이란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껴짐으로써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이다. 즉 ‘나는 공동체에 유익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주관적 감각인 공헌감을 가지는 것이다.
공헌감은 인정욕구와는 다른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다. 인간은 자유를 전제로 행복을 추구하므로 타자공헌은 타자신뢰와 마찬가지로 과제의 분리가 필요하다. 즉 공헌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며 공헌이 타인의 눈에 보이느냐 마느냐는 역시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며 오로지 ‘나의 과제’에 집중하는 공헌은 위선이 아닌 것이다.


4. 인생은 ‘선’이 아니라 ‘찰나(점)의 연속’

“아주 작은 일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세계 전체를 평가하려고 한다. 이 얼마나 조화가 결여된 잘못된 생활양식인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일부분에 초점을 맞추고는 그 작은 일부분이 마치 내 삶의 전부가 되어 세상을 다 갖기도 하고 솟아날 구멍이 없는 것처럼 하늘이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또 어느 날은 내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내 삶 그리고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 그 ‘선’ 위에서 과거를 끌어와 현재의 나를 합리화하거나 미래의 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아들러가 반복적으로 그 필요성을 주장하던 ‘과제의 분리’에서 중요한 것은 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인생을 ‘점’으로 볼 것이냐 ‘선’으로 볼 것이냐의 차이는 ‘지금, 여기’를 사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과거나 미래에 종속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여기’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내 삶의 중심인물로서 살아갈 것인가이다.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게 빈틈없이 해나가며 춤추듯이 찰나를 살다고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하고 깨닫게 되는 인생을 희망하며 나의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인생에 좀 더 의미를 주고자 한다.


5. 평범해질 용기: 일 중독자(workaholic)에서 벗어나자

일 중독자는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일을 구실로 다른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일 중독자는 단지 ‘행위의 차원’에서만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을 ‘행위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존재의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인가는 ‘행복해질 용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책에서는 이야기한다.
그 동안 ‘일하는 나’라는 행위 차원에서의 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타자들 역시 나의 ‘행위’를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느꼈고 그것에 더욱 매진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과제를 분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바라보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존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존재 차원의 나’에게 집중하지 않으니 타인의 시선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하고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는 ‘평범해질 용기’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며,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믿고 ‘존재 차원의 나,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용기를 내보자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