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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다섯번째 밤, 춤추듯이 살라

작성자
민상
작성일
2020-08-17 22:05
조회
1008
아들러가 말하는 인간관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체 감각이다. 그는 타인을 적이 아닌 친구로 생각하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을 공동체 감각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 등이 필요하다.
자기수용은 교환불가능한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자기긍정과 극명한 차이가 있다. 자기긍정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방식으로 자칫 우월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하지만 자기수용은 잘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자기를 속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음으로 타자신뢰가 이루어져야 한다. 신뢰는 담보가 있어야 하는 신용과 달리, 타인을 믿을 때 신용할 수 있을 만큼의 객관적 근거가 없더라도 믿음을 유지하는 태도를 말한다. 물론 상대방을 무조건 믿었을 경우 배신을 당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배신을 결정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며 자신은 상대방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만 생각하면 된다. 신뢰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면 결국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잘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타자공헌을 해야 한다. 타자공헌이 의미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정을 느낌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실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들러는 행복을 '공헌감'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정욕구를 통해 얻은 부자유스러운 공헌감이 아니라, 스스로 자유를 선택하며 느끼는 자유로운 공헌감이다.

그리고 또한 아들러는 인생을 선이 아닌 점으로 바라본다. 삶은 점의 연속, 다시 말해 찰나(순간)의 연속이기에 우리는 '지금,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춤을 추듯 살라'고 조언한다. 춤을 출 때는 춤을 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득 춤이 끝나고 뒤돌아 볼때 '여기까지 왔네'라고 그저 깨달을 뿐이다.
하루 하루의 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고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진지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삶의 의미는 없다. 다만 내 인생에 의미는 나만이 부여할 수 있다.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5번째 장에서 가장 와닿았던 문장은 '춤을 추듯 살라'와 '한 사람의 힘은 크다. 아니 나의 힘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1. 춤을 추듯 살라 - 나는 이제까지 인생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다. ex) 시험에 통과하는 것 등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나의 인생은 불완전했고 항상 불안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래에 목표를 이뤘을 때를 바라보았다. 근데 목표를 이뤘을 때 그 달콤함은 잠시, 또 다른 목표로 나를 집어넣고 나를 혹사시켰다. 과연 그 과정에서 행복은 존재할 수 있을까? 나의 인생은 끊임 없는 '우월성 추구'의 굴레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춤을 추듯 살라'는 아들러의 조언은 나의 생각을 180도 바꿔주었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가자. 내가 경험하는 하루하루를 모두 완성시키며 타자 공헌을 통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면 충분히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2. 나의 힘은 크다 - 아들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힘을 믿는다. 본인의 삶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트라우마를 현재 행위의 원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현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았다. 예를 들어 과거에 가정 폭력을 당하여 사회 생활을 꺼리는 아이가 있다고 해보자. 아들러에 따르면 그가 사회생활을 꺼리는 이유는 타인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며) 그 행위의 합리화 수단으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이용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가혹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인간의 힘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이다. 그에게는 사회생활을 잘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내재해 있으며, 그가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충분히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다시 말해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여기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인간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아들러의 이론은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나의 인생의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꼭 이루어질 수 있다.